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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 <수벽치기 바로알기3---육태안 전인의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의혹에 
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잘한 문제들이 몇몇 남아있는데, 
좀 귀찮더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1) '역전앞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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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태안 선생이 초창기에는 택견수벽이라고 했었는데 여러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역전앞" 같은 단어인
"수벽치기"로 현재 정리하게 됩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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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벽(手搏) = 손 수(手), 칠 박(搏, 拍  *옛날 음가가 '벽'이었음. 癖으로 쓰기도 함)
이미 搏에 '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뒤에 또 한 번 '치기'가 붙었으니
이것은 역전앞 오류라는 것이다.

이름도 제대로 못 짓냐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투가 섞여있는데, 이것은 간접적으로
수벽치기 조작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급조한 이름이니까 어설플 수 밖에 없다는)  


우선 해동죽지의 기록을 보자. 



이것은 1921년에 저술된 《해동죽지》중에서 {수벽타(手癖打)} 조이다.
 

옛 풍속에 수술이 있는데, 옛날 검기로부터 나왔다.
지키면서 서로 양손이 오고 가는데, 만일 한 손이라도
법칙을 잃으면 곧 타도당한다. 이름을 ‘수벽치기’ 라고 한다

舊俗有手術 古自劍技而來 對坐相打兩手去來
如有一手失法則便打倒 名之曰수벽치기


봐라, 한글로 '수벽치기'라고 써 있지 않은가. 
수벽치기라는 이름이 역전앞 오류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한들 물려받은 이름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조작이지.
 

우리와 대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무조건 미워하는 게 아니다. 그 무책임함에
분노할 뿐이다. 정말
그렇게 '까고' 싶다면 최소한 자료조사는 하고 그 다음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말이나 툭툭 던져놓고 나중에 아닌가벼-하면
끝인가? 



<덧붙임>

Q: 중앙문화센터 당시, 왜 강좌명이 [택견/수벽]에서 [수벽치기]로 바뀌게 되었나?
A: 택견 쪽에서 이름을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유는 '택견의 맥을 흐리기 때문'이었다. 
  
   신한승 선생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육태안에게 "수벽치기는 인지도가 낮으니
   먼저 택견사범으로 활동하면서 수벽치기는 천천히 시작하라"고 하셨다. 
   택견/수벽이라는 강좌명은 택견 측과 사전에 상의를 하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택견의 맥을 흐릴 수 있으니 강좌명에 택견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통보가 날라왔다. 그것도 전화로 말이다. 그 이후로 몇몇
   불쾌한 사건이 있었고 육태안 전인은 강좌명을 [택견/수벽]에서 [수벽치기]로
   바꾸게  된다.


  육태안 전인은 택견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한승 선생께서 일생을 통해 이루신 업적인 '택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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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복의 유사성




  사실 이 문제는 나도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기천문을 본 적이 
있는데 도복 생김새가 우리가 입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기천의 도복을 보자.

 (기천문 시범 모습,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njm0111?Redirect=Log&logNo=30073266018)


다음으로 수벽치기의 도복이다.


   (사진: 수벽치기. <금일한국> 97년 1월호.)

 
   저고리 디테일에서 좀 차이가 있지만 그거야 당사자들 눈에만 보이는 것이고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로 이 점이 수벽치기가 기천의 아류라는 주장의
결정적인 증거처럼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육태안 전인의 설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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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천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정해진 도복이 없었다. 수련하기에 편한 도복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수련을 하면서 항상 따라다니던 고민이었다. 기천에서 검은 바지와 흰색 상의를 입는 것은 나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일반 무술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정바지 위에 흰색 상의를 입었다. 한복바지는 당시에 비싸서 엄두도 못냈고. 그러니까 복장이 명확히 결정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도복에 관한 고민은 기천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수벽치기 도복을 제정할 때에도 역시 검은 한복바지와 흰색 개량 한복 저고리를 택하게 되었다.

  띠 매는 법은 박사규씨로부터 배운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천을 떠난 상태에서도 나에게 배우기를 원하는 기천의 몇몇 사람들을 지도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박사규씨였다. 어느 날 박사규씨가 띠를 매는 모습을 본 순간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고 나도 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천을 떠나기 전에는 그러한 띠 매는 법이 없었다. 박사규씨가 정확히 어디에서 그 매듭법을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전에 농악에서 상모를 머리에 고정시킬 때 그와 같은 방법으로 머리띠를 묶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전통적인 매듭을 도복의 허리띠에 적용한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고 나중에 수벽치기 도복에도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도복은 물론, 띠 매는 방법도 기천 고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기천 고유의 방식으로 인식했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수벽치기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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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미트 운동화에 대해선 차마 여쭤보지를 못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야외(특히 흙바닥)에서 운동할 때에는 슈퍼카미트가 제격이다. 지금은 선택의 폭이 많이 넓어졌지만 90년대에는 누구라도 같은 목적에서 마땅한 신발을 찾다보면 슈퍼카미트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런닝화들은 너무 쉽게 닳아버리고 일반 농구화는 내구성은 좋지만 발 감각이 둔해지는 감이 없잖은데, 슈퍼카미트는 그 중간에 위치해있다. 가격도 훌륭했다. 끈으로 묶는 방식이 아니라 지퍼로 되어있어서 신고 벗을 때 참 편하다.
 
다른 질문이 많아서 지엽적인 것으로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슈퍼카미트를 신는 '문화'도 도복처럼 육태안 선생님이 기천을 수련하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신발장 한구석에는 육태안 선생이 수련할 때 신었던 클래식 농구화(Sisley)가
  있다. 그 제품은 슈퍼카미트처럼 지퍼가 없고 끈으로만 묶는 방식이다.


(야외수련의 동반자-슈퍼카미트. 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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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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