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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 <수벽치기 바로알기3---육태안 전인의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의혹에 
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잘한 문제들이 몇몇 남아있는데, 
좀 귀찮더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1) '역전앞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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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태안 선생이 초창기에는 택견수벽이라고 했었는데 여러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역전앞" 같은 단어인
"수벽치기"로 현재 정리하게 됩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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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벽(手搏) = 손 수(手), 칠 박(搏, 拍  *옛날 음가가 '벽'이었음. 癖으로 쓰기도 함)
이미 搏에 '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뒤에 또 한 번 '치기'가 붙었으니
이것은 역전앞 오류라는 것이다.

이름도 제대로 못 짓냐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투가 섞여있는데, 이것은 간접적으로
수벽치기 조작설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급조한 이름이니까 어설플 수 밖에 없다는)  


우선 해동죽지의 기록을 보자. 



이것은 1921년에 저술된 《해동죽지》중에서 {수벽타(手癖打)} 조이다.
 

옛 풍속에 수술이 있는데, 옛날 검기로부터 나왔다.
지키면서 서로 양손이 오고 가는데, 만일 한 손이라도
법칙을 잃으면 곧 타도당한다. 이름을 ‘수벽치기’ 라고 한다

舊俗有手術 古自劍技而來 對坐相打兩手去來
如有一手失法則便打倒 名之曰수벽치기


봐라, 한글로 '수벽치기'라고 써 있지 않은가. 
수벽치기라는 이름이 역전앞 오류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다한들 물려받은 이름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거야말로 조작이지.
 

우리와 대립적인 입장에 있다고 무조건 미워하는 게 아니다. 그 무책임함에
분노할 뿐이다. 정말
그렇게 '까고' 싶다면 최소한 자료조사는 하고 그 다음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말이나 툭툭 던져놓고 나중에 아닌가벼-하면
끝인가? 



<덧붙임>

Q: 중앙문화센터 당시, 왜 강좌명이 [택견/수벽]에서 [수벽치기]로 바뀌게 되었나?
A: 택견 쪽에서 이름을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유는 '택견의 맥을 흐리기 때문'이었다. 
  
   신한승 선생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육태안에게 "수벽치기는 인지도가 낮으니
   먼저 택견사범으로 활동하면서 수벽치기는 천천히 시작하라"고 하셨다. 
   택견/수벽이라는 강좌명은 택견 측과 사전에 상의를 하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택견의 맥을 흐릴 수 있으니 강좌명에 택견이란 이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통보가 날라왔다. 그것도 전화로 말이다. 그 이후로 몇몇
   불쾌한 사건이 있었고 육태안 전인은 강좌명을 [택견/수벽]에서 [수벽치기]로
   바꾸게  된다.


  육태안 전인은 택견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한승 선생께서 일생을 통해 이루신 업적인 '택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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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복의 유사성




  사실 이 문제는 나도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기천문을 본 적이 
있는데 도복 생김새가 우리가 입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기천의 도복을 보자.

 (기천문 시범 모습,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njm0111?Redirect=Log&logNo=30073266018)


다음으로 수벽치기의 도복이다.


   (사진: 수벽치기. <금일한국> 97년 1월호.)

 
   저고리 디테일에서 좀 차이가 있지만 그거야 당사자들 눈에만 보이는 것이고
거의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로 이 점이 수벽치기가 기천의 아류라는 주장의
결정적인 증거처럼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육태안 전인의 설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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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천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정해진 도복이 없었다. 수련하기에 편한 도복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수련을 하면서 항상 따라다니던 고민이었다. 기천에서 검은 바지와 흰색 상의를 입는 것은 나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일반 무술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정바지 위에 흰색 상의를 입었다. 한복바지는 당시에 비싸서 엄두도 못냈고. 그러니까 복장이 명확히 결정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도복에 관한 고민은 기천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수벽치기 도복을 제정할 때에도 역시 검은 한복바지와 흰색 개량 한복 저고리를 택하게 되었다.

  띠 매는 법은 박사규씨로부터 배운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천을 떠난 상태에서도 나에게 배우기를 원하는 기천의 몇몇 사람들을 지도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박사규씨였다. 어느 날 박사규씨가 띠를 매는 모습을 본 순간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고 나도 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천을 떠나기 전에는 그러한 띠 매는 법이 없었다. 박사규씨가 정확히 어디에서 그 매듭법을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전에 농악에서 상모를 머리에 고정시킬 때 그와 같은 방법으로 머리띠를 묶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전통적인 매듭을 도복의 허리띠에 적용한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고 나중에 수벽치기 도복에도 그것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도복은 물론, 띠 매는 방법도 기천 고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기천 고유의 방식으로 인식했다면 그것이 아무리 좋다하여도 수벽치기에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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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미트 운동화에 대해선 차마 여쭤보지를 못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야외(특히 흙바닥)에서 운동할 때에는 슈퍼카미트가 제격이다. 지금은 선택의 폭이 많이 넓어졌지만 90년대에는 누구라도 같은 목적에서 마땅한 신발을 찾다보면 슈퍼카미트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런닝화들은 너무 쉽게 닳아버리고 일반 농구화는 내구성은 좋지만 발 감각이 둔해지는 감이 없잖은데, 슈퍼카미트는 그 중간에 위치해있다. 가격도 훌륭했다. 끈으로 묶는 방식이 아니라 지퍼로 되어있어서 신고 벗을 때 참 편하다.
 
다른 질문이 많아서 지엽적인 것으로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슈퍼카미트를 신는 '문화'도 도복처럼 육태안 선생님이 기천을 수련하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신발장 한구석에는 육태안 선생이 수련할 때 신었던 클래식 농구화(Sisley)가
  있다. 그 제품은 슈퍼카미트처럼 지퍼가 없고 끈으로만 묶는 방식이다.


(야외수련의 동반자-슈퍼카미트. 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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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이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육태안 선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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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수벽치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접했을 때 느낌은?

▲ 다시 돌이켜 생각하기 싫은 지난 일들,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기 짜증나는 그러한 일들은 그냥 과거 속에 묻어두고 싶다. 지금껏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서 내 개인의 명예는 지속적으로 훼손되었다. 수벽의 등장을 저지하기 위해 수벽을 바로 세우고자하는 한 개인을 야비하게 공격했다. 육태안을 죽이면 수벽치기도 죽을 것이라는 그들의 작전은 실패했다. 육태안도 못 죽였고 수벽치기는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나 하고의 개인적인 감정이 나빠서 그런 것이라면 나를 비판하라. 수벽치기까지 한꺼번에 몰아서 매장시키려 하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질문> 수벽치기에 대한 의혹 중 대부분은 기천과 연관된 내용이다. 아무래도
        수벽치기 이전에 깊이 수련했던 무예라 그런 것 같은데, 
       
현재 기천에 대한 생각은?

 ▲ 기천은 내가 젊은 시절 몰입하여 수련했던,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무술이다. 기천을 처음 만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마음 속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기천을 아끼고 존중한다. 특히 박대양 사부와의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를 잊은 적 없고 개인적인 정은 지금까지 깊게 남아있다. 그동안 수벽의 일을 하느라 기천과 떨어져 있었다. 내가 기천에서 활동을 하지 않고 수벽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말이 오간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내가 배운 내용에 대해서는... 잘 정리해서, 보태서 되돌려주고 싶다. 전통무예 기천의 존재는 우리문화의 자랑거리이며 박대양 사부에 의해 어렵게 전해진 전통무예의 중요한 맥이다. 후인들은 이 맥을 소중히 지키고 보존하면서 바르게 발전시켜야할 것이다.

  

질문> '기천의 배반자'라는 말이 있다.

 ▲ 요즘은 좀 잦아든 것 같기는 하지만… 자꾸 나를 배반자라고 하는데, 기천을 떠난 이후 30년이 되도록 배반자 소리를 들어야할만큼 잘못한 것이 있는지. 한 가지 명확히 해두고 싶은 것은 나는 기천으로부터 난데없이 제명을 당한 것이지 배반을 하고 떠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천 계보로 따지자면 한참 격차가 있는 새파란 사람들이 ‘왜 기천을 배반하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내 기분이 어떻겠는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서 그저 전해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여 함부로 말하는 것은 삼가해야할 일이 아닌가.

 

질문> 기천에 있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그 때 나의 관심은 기천의 체계화와 대중보급이었다. 몸 기능은 그야말로 절정이었고 열정 또한 대단했다. 크게 두 가지를 고민했는데, 첫째는 산에서 가르치고 배우던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으니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맞는 단계적인 수련체계를 만들자는 것이고 둘째는 역사․계보 문제만큼은 최대한 솔직하게 가자는 것이었다. 우선 신화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를 없애고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삼가고 상식 범위 안에서 이해되는 연원과 계보를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박대양 사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함께 사부가 수련했던 장소를 답사하기도 했다.

 

질문> 그런데 무엇 때문에 관계가 나빠지게 되었는지?

▲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답사를 다녀온 이후로 점점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답사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이야기가 퍼지면서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번 벌어진 틈은 그 후에 이어지는 몇 가지 사소한 일로 골이 깊어졌다.

 

질문> 조작된 이야기라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 이를테면 내가 사부의 뒷조사를 하고 다니고 있으며 사부의 약점을 잡아 기천을 장악하려 한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딱히 사부와 직접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일이다.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무슨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훗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 의해서 나에 대한 음해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씁쓸했다. 내가 기천에 끌어들였고, 내가 직접 운동을 가르쳤던 사람들이 설마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그 당시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나 또한 대인 관계에 있어서는 확실히 유연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봐도 고집스럽게 갔다. 20대의 혈기 왕성한 때였고 어려운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전통무예만 바라보고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세계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강경일변도로 맞서던 때였다. 그런 면에서 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나 섭섭한 감정을 갖는 사람이 꽤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지어내어 사람을 모함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질문> 기천에서 ‘제명’ 당한 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 혼자서 전통무예에 대한 조사‧연구를 계속했다. 문파 관계를 떠나 홀로 있으니까 참 편했다. 우연한 기회로 문화‧예술계와 접촉하게 되었고 그 쪽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데 아킬레스건을 다치고 말았다. 공연 도중이었다. 요양차 여주로 내려가서 그동안 모은 자료나 정리하면서 무술인으로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한편 생업으로 삼을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한승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보행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무술과의 인연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예전부터 택견에 관심이 많았고 여주에서 충주는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자주 찾아뵙게 되었다.

   

질문> 수벽치기 전인이 된 경위에 대해서.

▲ 수벽치기는 “젊은 사람한테 너무 큰 짐을 주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신한승 선생이 유언으로 부탁하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새로운 무술 문파를 창시하고 싶어서 신한승 선생을 앞세웠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수벽의 일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선생께서 돌아가신 후 신문에 ‘수벽치기 계승자는 육태안’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을 때 나는 수벽을 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이 살아계셨더라면 반납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리도 다친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막막하기만 했다. 혼자서 개척해나갈 자신도 없었고 무척 험난한 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질문> 신한승 선생으로부터 전수 받은 수벽치기의 내용은?

▲수벽8세-날개세우기, 한날개내리기, 두날개내리기, 날개들기, 날개내기, 날개내리기
               날개접기, 손뼉치기

   수벽8법-수벽(掌), 손날, 반날, 줌, 고드기, 잽이, 쏘기, 찝기(찍기)

   별법: 걸음, 발질

  수벽8세는 맨손검술이라고도 하는데 검기를 형상화한 동작이다. 검 없이 검의 기운을 몸 안에 담는 수련방법이다. 어느 정도 검을 쓸 줄 아는 상태에서 그것을 수렴시켜서 연습하는 것인데, 반대로 검술을 익히기 전 기초단계로 삼을 수도 있다.

  수벽8법은 보편적 무술의 영역이다. 앞의 다섯가지(장, 손날, 반날, 줌, 고드기)는 손모양에 따라 기법을 분류한 것이고, 뒤의 세가지는 개념으로 엮은 것이다. '잽이'는 유술(柔術)을 말하며 '쏘기'는 순간적으로 힘을 발출하여 가볍고 빠르게 내쏘는 것이다. 권투선수 알리의 쨉(jab)이 쏘기의 개념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잽이를 음유(陰柔)라고 한다면 쏘기는 양강(陽剛)이다. 찝기(찍기)는 급소를 치는 점혈법인데 무협지에서처럼 사람을 통째로 마비시키는 그런 것은 아니고, 짧은 거리에서 취약점을 타격하여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리거나 붙잡혔을 경우 틈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기법들은 일간스포츠 87년 7월 11일자 <수벽치기 계보 찾았다> 기사에도 명시되어 있다. 당시 취재는 육홍타 기자가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문중끼리 짜고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같은 육씨라고 말이다. 정말 갈 때까지 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밉다고 한들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때 PC통신에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왔는데 그걸 본 육홍타 기자가 직접 토론방에 들어와 정리한 적이 있다. 취재 당시 기법명칭은 내가 써서 준 것이 아니라 육홍타 기자가 신한승 선생으로부터 직접 받아 적은 것이다. 나는 그 내용을 기사에 넣을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그게 신문기사에 명시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87년 7월 11일 일간스포츠, <수벽치기 계보찾았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수벽치기는 크게 수벽팔세와 수벽팔법 두 영역으로 나뉜다. 수벽팔세 즉, 맨손검술은 함부로 변형을 해서는 안되는 엄격함이 서려 있지만 보편적 권법의 영역인 수벽팔법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열려있는 공간이다. 수벽팔법은 신한승 선생으로부터 내려받은 기법체계를 중심으로 그동안 여러 스승들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것들을 재정립한 것이다. 수벽팔법은 앞으로 더 풍성하게 발전되어야 하며 나는 지금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술이라면 으례 화려한 움직임과 강력한 파괴력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거나 대중 앞에서 시범을 보일 때에는 다소 정적이고 밋밋한 수벽팔세는 생략되거나 최소로 포함되고 대신 볼거리가 될만한 수벽팔법, 그 중에서도 위력시범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에 집중되었고 외부에 비춰지는 모습만을 두고 수벽치기가 육태안 개인의 창작물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 같다. 수벽치기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질문> 수벽치기는 기천을 적당히 개량한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 나는 우선 그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수벽에 대해서 얼마나 알며 또 기천은 얼마나 배웠는지.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적어도 기천과 수벽치기 양 쪽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깊이 수련하여 몸에 배어있는 무술적 습관은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습관을 금새 지워버리듯 없애고 다른 무술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나는 수벽을 만나기 전에 많은 무술들을 섭렵했다. 태권도, 합기도, 기천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내가 수벽을 만나기 이전에 수련했던 무술들이 내가 수벽을 정립하는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섭렵한 여러 무술을 종합해서 ‘수벽치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조작했다는 말은 모함이다. 이것은 수벽의 등장을 꺼려하는 세력들의 음모이다.

  수벽치기는 신한승 선생으로부터 전해진 수벽8세를 기준으로 수련하는 맨손검술의 세계이다. 이전에 내가 섭렵했던 무술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수벽치기는 본질 파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으며 올바른 해석을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수벽치기는 일반 무술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무술과의 비교 검토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질문> 앞으로 계획에 관하여 한 말씀.

▲ 수벽치기에 전념하느라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수벽치기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일이고 운신의 폭도 좁아 자유롭지 못했다. 수벽치기를 하면서 고약한 상황을 만나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앞으로는 나에 관한 이러저러한 소문에 휘둘리어 수벽치기를 오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벽치기의 체계를 잡는 것이 어느 정도 되었고 이제 다음 세대로 이어져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앞으로는 어느 한 문파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무도발전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참 기이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전통무예는 우리민족이 공유하여야 할 문화유산이다. 한 종류라도 더 찾아보아야 하고 희미한 흔적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나는
정말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더 이상 전통무예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후대 사람들은 어려움 없이, 우리 무예의 자산을 향유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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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종교의식에서 신을 향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정성스럽고 또 조심스럽다.

최고의 것을 드리고자 

작은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정성껏 받드는 마음. 



숨소리조차 헛되이 낼 수 없는,

그 고요하면서도 꽉 차 있는 순간에

우리는 어떤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수벽치기에서 예법(禮法)이란,

정제된 몸짓 속에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예법을 이해하는데 있어 

종교적 의식을 떠올리는 것이 가장 쉽고 또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느낌이 가장

흡사하기 때문이다. 혹은 예술작품 속에서 동일한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것은 남에게 고개를 숙여 서열 관계를 확인하는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흔히 말하는 인사성이

밝다거나 행실이 바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아이가 도장에 나가더니 부모에게 인사를 잘 하더라-.

이것은 분명 교육적으로 좋은 일이고 계속해서 독려해야할 일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예법과는 관계가 없다.    



  예법을 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상태에 올려 놓는 것이다.

특정한 몸동작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 상태를 부여하고 그 안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데 

그 의의가 있다. 종교적 의식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 행위가 외부의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 



  수벽치기 형(型)의 시작과 끝에는 반드시 예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첫 동작으로부터 시작된 예법의 정신을 이후의 모든 움직임 속에서 흩뜨리지 않고 유지하다가

그것을 잘 거두어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함이다. 선생들은 예법 동작만 보고도 그 사람의 수련 정도

를 가늠할 수 있다. 단순하고 짧은 동작이지만 거기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예법과 다스림의 정신을 모든 수련 과정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수벽치기 수련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기법은 넓은 의미에서 예법이 되는 셈이다. 

이것은 '왜 무도를 수련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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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영상은 대표적인 예법 동작이다.
그러니까 좁은 의미의 예법, '특화된' 예법이 되겠다. 



동작 순서:

  ①
손뼉아래 읍예 (모둠발)
  ②허리줌 예 (벌린발원신)
  ③고드기 가슴가새 (벌린발)
  ④가슴삼각 (모둠발)
  ⑤중심 예 (벌린발)
  ⑥줏대삼각 (벌린발)
 
  (마무리) 모둠발 가슴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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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맨손검술 세번째 시간

오늘은 '날개펴기''날개접기' 대해 알아보자.



수벽팔세(八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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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개세우기

2. 한날개내리기
3. 두날개내리기   *겨누기
-----------------------

4. 날개들기
5. 날개내기
6. 날개내리기   *날개펴기

-----------------------
7. 날개접기(날개꺾기)

-----------------------
8. 손뼉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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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번을 통칭하여 날개펴기라 하는데
손뼉을 중심에 모았다가 좌우로 펼치는 동작으로 
상-중-하의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각 동작마다 고유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날개들기(위, 天)----정성껏 받듦
▶날개내기(가운데, 人)----고루 나눔
▶날개내리기(아래, 地)---널리 베풂 이다.




(오른쪽 사진은 육태안 전인. 위에서부터
 날개들기, 날개내리기, 날개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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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펴기

이번 시간에도 역시 좌법으로 접근하자.
  



*동작 순서:

 날개내리기(아래)-날개들기(위)-날개내기(가운데)   *2회 반복

 (마무리) 날개내리기-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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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날개접기'




*동작 순서:

 ①날개접기-손날
 ②날개접기-반날
 ③손날 +반날틀기
 ④반날세우고 손날내리기

 (마무리) 날개내리기-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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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기'   (*윗 사진은 신한승 선생)

   고드기는 손끝을 가리키는 말로 수벽팔법 중 하나이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안쪽으로 구부려 둘째.셋째.넷째 손가락의 힘을 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고드기'라는 단어는 현재 국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15세기 이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경희대학교 서정범 명예교수의 의견),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 말로는 ‘고드름’과 ‘고드러지다’를 들 수 있다. 고드름의 17세기 문헌 표기는 ‘곳어름’이다. 즉, ‘곳다’, ‘곧다’의 어근 ‘곳/곧(直)’에 얼음이 합성되었고 이후 발음이 변하여 고드름이 되었다. 제주 사투리 ‘곳아죽다[동사(凍死)]’에서 ‘곳다’와 추워서 손이 곱다는 표현에 나타나는 ‘곱다’의 어근과 ‘곳-’과 ‘곱-’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고드러지다’도 마찬가지다. ‘고드러지다’는 마르거나 굳어서 빳빳하게 된 모양을 뜻하는데, 곧게 언 모양으로 생각된다. 즉, 손을 빳빳하게 만드는 ‘고드기’의 모습과도 통한다. ‘고드기’도 곳(곧)게 얼다라는 말에서 명사화 접미사 ‘-기’가 붙어 ‘곳(곧)얼기’가 되고 어떤 소리가 가까이 있는 다른 소리를 닮아 그것과 같거나 비슷한 소리로 바뀌는 동화현상에 의해 ‘고드기’로 변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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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수집한 수벽치기에 대한 언급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터넷 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크게 두 줄기로 간추려 볼 수 있다. 

 A. 수벽치기는 육태안이 조작한 것이다. '수벽치기=사기'
   신한승 선생과 일동 선생은 수벽치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모두 육태안이 꾸며낸 것이다. 수벽치기는 육태안 개인의
창작물이다
.

*세부항목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전통무예 타이틀이 필요해서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기천의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자 적당한 명분이 필요해서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네들 동원해서 뻥치지 마라
 - 무술내용이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해주마. 그냥 자기가 창시했다고 하지 그래? 


 
 B. 이름 뿐인 수벽치기의 내용을 채워넣은 것은 기천의 기법이다.
    다시 말해
수벽치기는 기천의 아류, 조금 호의적으로 말했을 때 
    '기천의 업그레이드된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세부항목
- 육태안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문파를 만들기 위해 기천을 배반했다.
- 기천을 통째로 수벽치기로 바꾸자고 건의했다가 거절당함.
- 도복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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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위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각 항목에 일일히 답하기 보다 먼저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된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다음은 육태안 선생의
80년대~90년대 초 상황과 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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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천에서 일방적으로 제명당했다. 

기천을 배반하고
떠나온 것이 아니라 제명 당한 것이다. 당시 박대양 사부와 
사소한 불화가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2
기천과 헤어진 후로는 전통무예 연구가로서 활동하면서 공연예술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러다 ‘산울림소극장  개관기념-울타리 굿’ 공연 도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것은 무술사범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친 몸을 회복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경기도 여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동안 조사했던 무예에 관한 자료들을 다듬고 무예가로서의 삶을 정리하려 했다.


#3
그 때 신한승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신한승 선생께서 먼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한 번 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찾아뵙게 되었다. 당시 나의 관심은 수벽치기 보다도 택견에 있었다. 그러던 중, 선생께서는 사전에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벽치기 계승자는 육태안’이라고 발표하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의 일이었는데, 그것이 기사화되어 세상에 알려졌을 때에는 신한승 선생님은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4
수벽치기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내 의사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유언이며 반납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중앙문화센터 강좌를 시작으로 수벽치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무예의 맥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
수벽치기 강좌와는 별도로 이전부터 기천을 배우던 사람들에게는 기천을 계속 지도했다. 수벽치기와 기천을, 각각 독립적이면서 서로 통할 수 있게끔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래서 기천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나를 따르며 기천을 배워왔던 사람들에게 당장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지도는 계속 하였다.


#6
(기천에서 의도했든 안했든) 기천과 연관된 각종 거짓소문과 악의적 비방에도 
불구하고 
대응하지 않았던 까닭은
박대양 사부와의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인간적인 정은 다른 사람이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천이라는 무예의 맥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라도 흠집을 낼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7
신한승 선생께서는 수벽을 개척할 때에 택견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택견의 그러한 행동에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신한승 선생의 일생의 업적이 택견인데, 돌아가신 후에 집안싸움처럼 보일까봐 입을 다문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수벽치기 바로알기 3편----육태안 전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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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맨손검술 두번째 시간.


오늘 살펴볼 내용은

수벽팔세 중에서도
겨누기 부분이다.







수벽팔세(八勢)

1. 날개세우기
2. 한날개내리기
3. 두날개내리기
4. 날개들기
5. 날개내기
6. 날개내리기
7. 날개접기(날개꺾기)
8. 손뼉치기


(파란색 부분이 겨누기 계열. 오른쪽은 87년 7월 11일, 일간스포츠 기사 중 팔세 부분)

1,2,3번은 손(날개)이 몸의 중심선상에 놓이며 이것을 '겨누기'라 한다. (상-중-하)
4,5,6번은 손을 좌우로 펼치는 동작인데 이것을 '날개펴기'라 한다. (상-중-하)
7,8번은 각각 독립적 영역을 차지한다. 

--------------------------------------------------------------------------
     
  
  앞선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맨손검술을 '실전적 효용'이란 틀에서 해석할 경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기껏해야 손날로 때리거나 손끝으로 쑤시는 동작일텐데, 참으로 비효율적인 공격이 아닐 수 없다.
    맨손검술을 수련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줏대벼르기'이다. 줏대는 정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검술을 상징화한 동작을 통해 줏대를 바로 세우는 것이 이 수련의 목적이다. '벼르다'는 '벼리다'의 사투리 격으로 '칼날을 벼리다'로 많이 쓰인다. 그렇다고 해서 날카롭고 사나운 상태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올곧게 세우되 살기 없이 밝고 온화하게.       

그럼 동작을 보자.




동작 순서:

(준비) 날개내리기

①(뒷목치고)날개세우기
②(허리재고)날개찌르기
③(손뼉위치고)두날개내리기

④한날개내리기---두손제치기
⑤한날개내리기---안쪽막기
⑥한날개내리기---굴려 찌르기

(마무리) 날개내리기, 옆들기-원신, 중심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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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동영상을 보고 있는 여러분의 기분이 대충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이건 별로 재밌는 동작은 아니다. 수벽치기를 오래 수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수벽팔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곳은 맨손검술의 세계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관심은 쌈수(실전수)쪽에 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육태안 전인은 맨손검술을 가리켜 조선간장과도 같다고 하였다. 쌈수(실전수)가 콩을 삶아 먹는 것이라면 맨손검술은 '더이상 콩의 흔적(실전적 느낌)을 찾아볼 수 없는' 간장이라고 하겠다. 혹은 히말라야 꼭대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다양한 수종이 분포되어 있는 중턱에서는 열매도 따먹고 나물도 채취할 수 있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는 나무 한 그루조차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만큼 맨손검술의 세계는 고독한 것이리라.  
 
    
  맨손검술은 (비록 인기는 없지만)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육태안 전인은 강조한다. 처음엔 별다른 매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검수련과 병행하여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있으며 그 느낌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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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 맨손검술의 다양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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