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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수집한 수벽치기에 대한 언급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터넷 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크게 두 줄기로 간추려 볼 수 있다. 

 A. 수벽치기는 육태안이 조작한 것이다. '수벽치기=사기'
   신한승 선생과 일동 선생은 수벽치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모두 육태안이 꾸며낸 것이다. 수벽치기는 육태안 개인의
창작물이다
.

*세부항목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전통무예 타이틀이 필요해서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기천의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자 적당한 명분이 필요해서 
 - (왜 수벽치기가 필요했나?)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네들 동원해서 뻥치지 마라
 - 무술내용이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해주마. 그냥 자기가 창시했다고 하지 그래? 


 
 B. 이름 뿐인 수벽치기의 내용을 채워넣은 것은 기천의 기법이다.
    다시 말해
수벽치기는 기천의 아류, 조금 호의적으로 말했을 때 
    '기천의 업그레이드된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세부항목
- 육태안은 자신만의 독립적인 문파를 만들기 위해 기천을 배반했다.
- 기천을 통째로 수벽치기로 바꾸자고 건의했다가 거절당함.
- 도복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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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위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각 항목에 일일히 답하기 보다 먼저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된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다음은 육태안 선생의
80년대~90년대 초 상황과 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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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천에서 일방적으로 제명당했다. 

기천을 배반하고
떠나온 것이 아니라 제명 당한 것이다. 당시 박대양 사부와 
사소한 불화가 있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2
기천과 헤어진 후로는 전통무예 연구가로서 활동하면서 공연예술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러다 ‘산울림소극장  개관기념-울타리 굿’ 공연 도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사고를 겪었다. 그것은 무술사범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친 몸을 회복하고 생각도 정리할 겸 경기도 여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동안 조사했던 무예에 관한 자료들을 다듬고 무예가로서의 삶을 정리하려 했다.


#3
그 때 신한승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신한승 선생께서 먼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한 번 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찾아뵙게 되었다. 당시 나의 관심은 수벽치기 보다도 택견에 있었다. 그러던 중, 선생께서는 사전에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벽치기 계승자는 육태안’이라고 발표하셨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의 일이었는데, 그것이 기사화되어 세상에 알려졌을 때에는 신한승 선생님은 더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  


#4
수벽치기는 여러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내 의사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유언이며 반납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중앙문화센터 강좌를 시작으로 수벽치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무예의 맥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
수벽치기 강좌와는 별도로 이전부터 기천을 배우던 사람들에게는 기천을 계속 지도했다. 수벽치기와 기천을, 각각 독립적이면서 서로 통할 수 있게끔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부턴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래서 기천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나를 따르며 기천을 배워왔던 사람들에게 당장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지도는 계속 하였다.


#6
(기천에서 의도했든 안했든) 기천과 연관된 각종 거짓소문과 악의적 비방에도 
불구하고 
대응하지 않았던 까닭은
박대양 사부와의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인간적인 정은 다른 사람이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천이라는 무예의 맥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라도 흠집을 낼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7
신한승 선생께서는 수벽을 개척할 때에 택견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택견의 그러한 행동에 대응하지 않았던 것은 신한승 선생의 일생의 업적이 택견인데, 돌아가신 후에 집안싸움처럼 보일까봐 입을 다문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수벽치기 바로알기 3편----육태안 전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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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줏대벼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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